우리나라 경상수지 및 상품수지의 GNI 대비 비율, 1877-2015
- 발행일 : 2018-01-03
- 저자 : 김낙년
- 연번 : G2018-02
- 201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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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낙성대경제연구소
<그래프> 우리나라 경상수지 및 상품수지의 GNI 대비 비율, 1877-2015
주: 1) 상품수지 또는 경상수지 적자 또는 흑자의 대 GNI 비율이다.
2) 1877-1910년는 자료의 제약으로 상품수지만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 GNI는 가정에 이해 연장한 것이다.
자료: 김낙년, 박기주, 박이택, 차명수 편, 『한국의 장기통계』(도서출판 해남, 2018), Chapter N 국민소득, 표 N2, N50, N65, N79.
이 그래프는 조선의 개항 이후 상품수지와 경상수지 적자 또는 흑자가 어떠한 추이를 밟아왔고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이기 위해 GNI(국민총소득) 대비 비율을 제시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그 적자의 비율은 개항 이후 서서히 커지고 있었지만, 특히 러일전쟁(1904-05년)을 계기로 하여 급격히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상품수지의 적자 기조는 식민지기에도 이어졌다. 일본으로부터 투자와 과실송금의 증가로 본원수지는 적자를 보인 반면, 일본이 부담한 행정 비용과 조선총독부에 지급한 보조금 등으로 이전수지는 흑자를 나타냈다. 이들을 합친 경상수지의 적자 규모는 1910-20년대에는 GNI 대비 1% 대였지만, 1930년대는 4%에 가까운 수준으로 높아졌다. 1930년대에 전개된 식민지 공업화와 그를 위한 일본으로부터 대규모 자본유입이 이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고 있었다.
해방 직후에는 정치적 혼란으로 무역이 붕괴되다시피 하였는데, 미국과 UN으로부터의 원조가 한국경제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1950년대에 상품수지 적자가 GNI의 10%까지 확대되었지만, 경상수지 적자가 1% 대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해외원조의 덕분이었다.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전반까지는 상품수지 적자 기조가 더욱 확대되었고, 그것이 경상수지 적자를 대부분 규정하였다. 높은 투자를 반영하는 자본재와 원자재 수입의 증가,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나타난 원유 가격의 급등이 영향을 미쳤다. 1960-70년대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GNI의 5%를 넘어섰는데, 그만큼 해외로부터 차관이나 직접투자 등의 형태로 자본유입이 많았음을 뜻한다.
1980년대 후반에는 이른바 3저호황에 힘입어 수출이 급등한 반면 원유가격 안정 등으로 수입액의 증가는 크지 않아 상품 및 경상 수지가 처음으로 흑자로 전환하였다. 외환위기(1997년) 직전에는 다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기도 하였지만, 그 이후에는 흑자 구조가 정착하였고, 2010년 이후에는 그 규모가 GNI 대비 4.4%에 이를 정도로 커졌음을 알 수 있다. 그 내역을 보면, 상품수지의 흑자가 확대되는 가운데 서비스수지의 적자가 크게 늘어났다. 서비스수지에서 건설수지는 큰 규모의 흑자가 지속되었지만, 여행수지, 사업수지, 지식재산권 수지, 가공수지 등에서 적자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본원소득 수지에서는 투자소득이 중요한데, 그것은 2010년 이후 처음으로 흑자로 전환하였다. 경상수지 흑자가 누적되면서 해외투자와 그로 인한 수익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전소득 수지는 2000년대 이후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되었다. 정부의 ODA 원조가 늘어난 것도 있지만, 1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외국인 근로자의 해외 송금이 해외에 거주한 한국인 근로자의 국내 송금보다 더 커졌기 때문이다.
자료: 『한국의 장기통계』, Chapter N. 국민소득, 표 N50,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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