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ing Papers

주사파도 친일파도 아닌 한국 현대사

  • 발행일 : 2023-04-27
  • 저자 : 차명수
  • 연번 : WP2023-02
  • 20230427_WP2023-02.pdf(29)
  • 2023.04.27
  • 조회수 : 392
  • (사단)낙성대경제연구소

주사파도 친일파도 아닌 한국 현대사


차명수(영남대 명예교수)

<머릿말>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과거는 이런 것이었다고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주장 -- 이것이 역사다. 특정한 과거상을 가지고 남들을 세뇌하려는 이유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한 편으로 포섭해 자신이 속한 세력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역사는 지금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권력 투쟁의 한 장면이며 그래서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주장이 대한민국에서 만큼 설득력있게 들리는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국내 권력 투쟁, 글러벌 패권 싸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주사파는 한국을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두고 통제 경제, 자급 자족 체제, 인민 민주주의를 세우려 한다. 친일파는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세력권에 안에서 시장 경제, 국제 분업, 자유 민주주의를 유지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런 정책 어젠다에 걸맞게 주사파는 일본 침략으로 조선 시대의 주체적 발전이 짓밟히고 이를 친일파 정권이 계승해서 미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체제를 수립했다고 한다. 친일파 역사에 의하면 일본은 망해서 싼 왕조 체제를 무너뜨리고 제도 개혁을 통해 시장 경제를 수립하고 경제 성장에 시동을 걸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해방 후 고도 성장이 일어났다.

  주사파와 친일파 역사 중 어느 쪽을 믿어야 할까? 과거에 대한 정보는 불완전하기에 상반된 주장들에 대한 완벽한 팩트 체크를 할 수 없다. 생업이 있으니 서로 다른 서술의 일관성에 대해 따져볼 시간도 별로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따르는 해석을 믿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물론 자기가 처한 환경에 따라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역사는 달라진다.

  누구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어떤 역사 해석의 타당성을 평가할 수 없다고 해서 상이한 역사 서술의 우열을 평가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남아있는 과거에 대한 정보가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그것과 더 합치하는 주장과 덜 합치하는 주장을 구별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서술의 논리적 일관성은 체크할 수 있다. 이미 가짜 뉴스로 판명난 정보를 바탕으로 씌여진 혹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들로 이루어진 역사 서술을 믿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은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들을 찾아 어느 쪽에 전세가 유리한지를 설명한다. 위안부는 돈 벌러 자발적으로 집을 나간 매춘부였나? 친일파의 정체는 무엇이며, 이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아 역사 발전이 꼬여 버린 건가? 

  이 책은 조만간 역사 전쟁에 휘말리게 될 이슈들에 대해서도 선제적인 논의를 개시한다. 농지개혁은 농업 발전과 인적 자본 축적을 위해 좋은 것이었나? 1960년 이후 일인당 소득이 빠르게 증가한 게 박정희 덕인가? 민주화와 고도 성장은 별개의 사건이었나? 아니라면 어떻게 관련되어 있나?

  기존의 한국 현대사 서술들은 선택적 증거를 바탕으로 비합리적 추론을 펴고 있어서 무협지나 동화와 별로 다르지 않은 구석이 적지 않다. 이 책은 이런 싸구려 역사 서술들을 넘어서 증거에 바탕을 둔 합리적 추론을 제공한다.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역사의 진실”이 아니며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서술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특정 이념을 전파하거나 역사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어느 한 편을 지지하기 위해 씌여지지 않았다. 이 책에 제시된 상반된 해석들에 대한 평가 중 어떤 것은 친일파들이, 어떤 것은 주사파들이 더 좋아할 것임을 독자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주장하는 내용은 사안에 따라 치우침의 방향이 다르고 그런 의미에서 균형 잡힌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다른 역사 서술과 마찬가지로 주관적인 것이다. 그러나 주장의 실증적 논리적 근거를 투명하게 제시하고 있으므로 독자들은 이를 어렵지 않게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014년 발간한 기아와 기적의 기원의 속편이다. 10년전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이슈들을 집중 조명하면서 그 때 펼쳤던 주장 중 일부를 뒤집기도 했고 비판에 대한 방어도 포함시켰으며 기존의 주장을 입증해 주는 새로운 증거들도 제시했다. 이 책의 서술은 대부분 지난 10년 동안 발표한 개별 연구들을 바탕으로 한다. 역사학자나 경제학자가 아닌 독자들을 의식해서 기술적이거나 지루한 내용은 건너 뛰었으니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링크가 걸려 있는 논문들을 다운로드해서 읽어 보시면 되겠다.